드보르작 슬픔의 성모Stabat Mater op.58

대전 시립교향악단이 함신익 지휘자의 지휘로 2005년 12월 30일 송년 음악회 때 연주했던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를 감동적으로 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알게 된 스타바트 마테르. 페르콜레시의 곡도 들어보고 그러다 드보르작 스타바트 마테르를 대전시립합창단이 연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일찌감치 예매를 하고 기다렸습니다. 음반을 구입해서 곡이 몸 안으로 스며들 때까지 듣고 또 듣고, 유튜브 동영상으로 보고 들으며 곡을 숙지했습니다. 아름다운 곡. 천상의 소리. 이런 말들은 피상적인 말이 아니라 음악이 실체로 드러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음반으로 듣던 음악을 현장에서 만나는 기대감, 설렘. 기다림은 참 행복한 초조함을 줍니다.

1. 비탄에 잠긴 어머니
목관악기의 조용한 소리와 호른의 분명한 소리로 곡이 시작됩니다. 대전시향의 호른 주자 후이 리 씨의 호른 소리가 참 좋습니다. 서곡처럼 오케스트라가 애절하고 슬픈 음악을 연주합니다. 음악은 눈물을 머금고 있습니다.
[당신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동안 그 곁에서 어머니 비통하게 울며 서 계시네]
아름다운 슬픔. 슬픔의 극한은 아름다운 소리로 눈앞에서 흘러나옵니다. 합창단의 소리는 슬픔을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높고 높이 하늘 위로 불러올립니다. 여성의 목소리는 마리아의 애절하고 비통한 마음을 담고 있으며 남성의 깨끗하고 굵은 목소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애통하며 부르는 목소리입니다.
테너 서필 씨가 합창 후 일어서서 부릅니다. [칼에 찔렸을 때 예수님의 영혼은 신음하고 슬퍼하며 고통스러워하시네] 소프라노가 받아 [오 독생자의 거룩한 어머니께서는 얼마나 애통하고 괴로우실까!]
음반으로 듣던 가사를 우리 글로 해석하여 자막으로 보여주니 그 의미가 잘 드러나며 감동을 줍니다.
베이스 이응광 씨가 일어나서 노래합니다. [자애로운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복된 아들이 형벌 받는 모습에 얼마나 애통하고 괴로우실까 자애로운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복된 아들이 형벌 받는 모습에 근심하시며 슬픔에 떨고 계시네.]
4중창의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 사성부의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합해지며 울립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동의 작용. 이 곡을 작곡할 때의 드보르작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자식을 연달아 잃은 드보르작의 참담한 마음이 스타바트 마테르에 담겨 있습니다.
합창이 주는 정수를 느낍니다. 최고의 음을 네 파트가 합해서 낼 때의 감동.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도 보랏빛 노을처럼 스며들어 합창과 하나 됩니다. 1곡의 아름다움. 소리는 보이고 잡힐 듯, 만져질 듯해 가슴으로 감싸 안으며 듣습니다.

2. 누가 눈물을 참을 수 있는가(사중창)
알토 소리를 듣는 즐거움. 모든 아름다운 소리는 시공을 초월합니다. 음반과 동영상으로 듣던 소리는 현재의 음악이 되어 고스란히 들립니다.
[그리스도 어머니의 이러한 고뇌를 보고 함께 울지 않을 이 그 누구인가? 신실한 어머니가 당신 아들의 고통을 바라보시는 모습에 함께 슬퍼하지 않을 이 또한 누구인가?]
[당신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께서 채찍질 받으며 수난 당하는 것을 보고 계시네 당신 사랑하는 아드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는 모습을 바라보고 계시네]
최대한 숨죽인 악기 소리는 독창자들의 소리 뒤에서 받쳐주며 흐느낍니다. 낮게 깔리는 베이스 이응광 씨의 소리를 들으니 가슴 깊이 마음도 가라앉습니다.
[그리스도 어머니의 이러한 고뇌를 보고 함께 울지 않을 이 그 누구인가? 당신 사랑하는 아드님의 영혼이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계시네.]
듣고 듣던 소리들은 가사로 더 애절하게 찌르며 가슴으로 파고 들어옵니다.

3. 아, 어머니 사랑의 샘이여(합창)
오보에 소리와 함께 신비스러운 합창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사랑의 원천이신 어머니시여! 나로 하여금 그 고통을 느끼게 하시어 나도 당신과 함께 슬퍼하게 하소서]
합창으로 들리는 아름다운 선율을 가사를 보며 들으니 사랑의 어머니의 고통스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슬픔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 갑니다. 합창을 부르다보면 그 곡조와 가사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감동할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의 울컥함을 들으며 느낌을 떠올립니다. 이 아름다운 곡조를 영원히 들으며 느낄 수 있게 사진처럼 한 장으로 똑 떼서 걸어놓고 싶은 심정입니다. 귀로 감동한 소리들은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4. 내 마음 불을 놓아 타오르게 하소서(베이스 솔로와 합창)
[저의 마음을 우리 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 마음에 들게 하소서]
듣고 싶고 기대하던 이응광 씨의 소리를 듣는 감동. 세계적인 소리. 굵고 넓고 깊은 울림의 소리가 객석으로 그대로 전달됩니다.
[거룩하신 어머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상처를 저희 마음에도 깊이 새겨 주소서]
가사에 담긴 간절함이 이응광 베이스 소리로 깊게, 깊게 내려 울립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예수님의 목소리로 듣는 듯합니다. 51명의 합창단원은 한 사람이 무릎 꿇고 드리는 기도처럼 한 덩어리의 절규로 솟아오릅니다. 슬픔을 담은 덩어리. 베이스 솔로 소리의 우뚝한 소리. 목 놓아 부르는 간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5. 상처 입은 예수님(합창)
[저를 위하여 고통 받는 당신 아들의 상처를 저도 함께 나누게 하소서.]
반복하고 반복하며 고통을 함께 나누게 해달라고, 애원하며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합창에 담겨 있습니다. 합창이 주는 최고의 감동과 전율. 곡조와 리듬, 연주의 빛깔이 한데 어우러져 울려 퍼집니다. 마음의 소리는 곡조로 합창으로 쿵쿵 울립니다.

6. 당신과 함께 진실 되어 울게 하소서(테너 솔로와 합창)
[제가 진정 당신과 함께 울게 하소서. 제가 사는 동안 함께하게 하소서]
테너 서필 씨의 맑은 호소. 저렇게 깨끗한 소리가 숨죽이며 떨리는 마음의 고동 소리와 합해지며 전율하게 만듭니다.
[십자가 곁에서 당신과 함께 서서 기꺼이 당신과 함께 통곡하게 하소서]
가사와 곡조에 감동한 가슴 속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몸을 뜨겁게 합니다. 이렇게 온전히 전곡을 감상하는 감격과 즐거움을 주신 대전시립합창단과 대전시립교향악단에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7. 동정녀 중의 동정녀시여(합창)
[동정녀 중의 동정녀시여 제게 더 이상의 쓰라린 고통은 존재하지 않사오니 제가 당신과 함께 가슴을 치며 울게 하소서]
가늘고 높고 아름다운 소프라노 소리와 낮고 분명한 남성의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소리 위에서 깨끗하게, 한 점 흠 없이 들립니다. 저절로 무릎 꿇게 만드는 힘이 소리에서 느껴집니다. 합창 후 잠깐의 정적은 가슴 속 두근거림을 더 크게 느끼게 합니다. 듣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 개의 음악이 하나의 곡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시작과 끝의 구성을 생각하며 듣는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8.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니게 하시고(소프라노와 테너의 듀엣)
[저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수난을 함께 나누고 상처를 되새기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함께 느끼게 하소서]
작은 체구의 소프라노 몸에서 나오는 저 소리. 테너의 저 높고 분명한 소리. 둘이 함께 합해서 내는 높은 소리. 첫 곡부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팽팽하게 당겨진 소리의 끈을 잡고 슬픔의 소리에 동참합니다.

9. 심판의 날에(알토 솔로)
[나의 열정과 열의가 동정녀 당신으로 하여금 지켜지게 하소서. 심판의 날에]
알토 김정미 씨의 호소하는 소리가 깊은 숲 속의 굵은 나무둥치 같고 커다란 바위 절벽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넓은 산 아래 같이 깊게 울립니다.
[저를 십자가의 수호자로 세우시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보호하시고 은총 속에 보살펴 주소서]

10. 이 몸이 죽을 때(4중창과 합창)
첫 곡의 선율이 다시 들립니다.
[제가 죽을 때 제 영혼이 천국의 영광에 들게 하소서]
4중창으로 천국을 노래합니다. 각자의 목소리로 간절한 마음은 서로 합쳐져 더 큰 간구와 기도로 하늘 높이 올라갑니다. 합창의 거대한 소리가 모든 힘을 쏟아 외칩니다.
[제가 죽을 때 제 영혼이 천국의 영광에 들게 하소서. 아멘]
계속 이어지는 아멘. 아멘은 크고 높고 낮고 길고 짧고 단호하게, 지르는 듯, 외치는 듯, 찌르는 듯, 아멘, 아멘 이어집니다.
가장 크고 간절한 아멘송이 몸을 무대로 쏠리게 합니다. 가장 크고 높고 강하게 아멘, 아멘, 아주 작고, 작고 작은 소리로 사라지듯 아멘, 아멘 끝을 맺습니다.

아름답고 감동한 연주는 말이 필요 없는데 너무 좋은 연주라 한 번 듣고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 이렇게 주절주절 써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곡을 작곡한 드보르작. 그 곡의 아름다움을 연주한 대전시립교향악단, 지휘자 빈프리트 톨. 목소리로 노래한 대전시립합창단, 네 명의 솔리스트 소프라노 김순영, 알토 김정미, 테너 서필, 베이스 이응광.

소설가 김영하 씨의 책 [말하다]를 읽다가 인상 깊게 느껴 적어 두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작가는 늙지 않는 발레리나와 같아요. 늙었다고 퇴화하거나 점프의 높이가 낮아지거나 그러면 안 돼요. 관객은 그날 하루 가서 즐겁게 관람하기를 바라고, 발레리나는 자기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서 더 극복하고 더 진보하고 나아지기를 바라죠.”

늙지 않는 발레리나처럼 점프의 높이와 선이 아름답게 살아있는 모습으로 곡을 연주하고 합창으로 솔리스트로 노래해주어 감동했습니다. 감동과 감사의 마음을 박수에 담아 오래도록 무대로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