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고단하고 치열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어려움을 견디며 인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죽음에 맞닥뜨리게 될 때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지 생각해 볼 것이고, 분명 죽음 자체가 두렵기도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살아오면서 한번쯤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본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었다면, 그 사람과 공유했던 인생이 너무 아름답게 떠올라서, 눈물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을 겪으면 잠시나마 누구나 삶과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는 철학자가 됩니다. 사람은 왜 죽어야 하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예부터 많은 예술가들도 이런 경험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서 깊이 고민한 모양입니다. 여러 고전 작품들로부터 우리는 그들이 제기한 수많은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들을 접하게 됩니다. 특히, 고전 음악을 들으면 곡에 따라서 죽음의 문턱에서 아름다웠던 시절을 회상시키는 느낌을 주기도 하며,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인생을 지나오면서 짊어진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예술의 전당을 들어오는 느낌은 남달랐습니다. 워낙 유명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공연한다기에 들뜨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번 공연을 통해 또 다른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습니다.

  공연은 총 세 가지 곡으로 구성되어 진행되었는데, 각각 죽음이라는 비슷한 테마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곡인 브람스의 내니(Nänie)는 죽은 친구를 위해 작곡된 곡이고, 두 번째 곡은 모차르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작곡한 관현악곡이며, 세 번째 곡인 레퀴엠은 그 이름의 뜻 그대로 죽은 이를 위한 '안식'의 노래입니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이미 알려진 대로 과연 숙련된 음악천재의 곡답게 고저 음역의 균형 잡힌 음색이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클라리넷 협주곡이 끝난 후 제 눈에 클라리넷 연주자만 보였을 정도로, 작은 악기로 무대 위를 장악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저는 맨 앞자리에서 그 분의 상기된 얼굴과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보면서 그 힘이 그 분의 수많은 노력 속에 있었음을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진혹곡’이라고 번역되는 레퀴엠의 경우, 현악기의 강한 선율의 흐름이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만들고는 관악기의 부드러운 선율로 속삭이는 듯하다가 합창단의 강한 외침 속에서 마치 하늘의 높으신 분께 울부짖으면서 구원해달라는 듯했습니다. 푸가 형식으로 높은 음역 대에서 끌어내려 첼로와 베이스가 다시 들어 올리는 선율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저에게 감명을 준 곡은 브람스의 내니(Nänie)라는 곡입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저는 이 곡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죽음에 대해서 노래를 하고 있는데도 레퀴엠과 같은 무거움이 덜하고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슬퍼하지만 그를 위해 슬픔의 노래가 불리는 것에서 영화롭다고 표현하는 가사처럼 저는 이 곡을 들을 때 정말 친구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입을 모아 진심으로 노래 부르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정녕 인간이 인생이라는 여행 끝에 남은 것이 죽음뿐이라면, 그 것을 막을 수 없으므로 마음 편히 받아들이고 행복 속에서 잠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친구의 죽음이라면, 그를 위해 우리들이 곁에서 그대는 잘 살았노라고 웃으며 끝까지 노래해줄 수 있는 것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 때 친구는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완전하지 못한, 아니 완전하지 않기에 더더욱 훌륭한 자신의 인생을 위한 위로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날 그렇게 위로하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대전 시립 합창단을 통해 고전 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