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합창으로 태어나다

-대전시립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

어느덧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바쁘고 지친 일상을 잠시 뒤로 하고 오랜만에 대전시립합창단의 103회 정기연주회에 다녀왔다. 독일 합창계에서 이미 독보적 위치의 지휘자 빈프리트 톨의 지휘로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듣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움을 더한다. 음악을 통한 성탄축하의 메시지가 밝고 서정적인 선율로 가득한 이 작품은 총 6부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번 연주에서는 3,4부를 제외하고 연주되었다.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이 현악을 맡고 관악과 팀파니 등은 대전시립교향악단의 단원들이 함께했다. 네 명의 독창자는 조윤조(소), 김선정(알),박승희(테),정록기(베)가 출연하였다.

팀파니의 힘찬 두드림으로 시작되는 1부는 합창으로 시작된다.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축복이 전편을 가득 채운다. 시립합창단의 합창은 시종 자신감에 찬 목소리였고 이는 듣는 이로 하여금 노래가 된 말씀에 확신을 불러 일으켰다. 2부는 시칠리아풍의 목가적 분위기가 지배하는 곡이다. 깊은 밤, 목자에게 나타난 천사가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이다. 오보에, 플루트 등 목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플루트의 맑은 소리에 더해진 미성의 테너 아리아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지휘자 톨은 2부에서 서정미를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들려주었다. 5부와 6부는 동방박사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데 5부에서는 오보에의 선율 위에 베이스의 아리아와 바이올린의 전주에 이어 소프라노, 테너의 대화 후에 알토가 가담하는 3중창이 하이라이트였다. 마지막 6부는 그리스도가 승리자로 기억되는 내용으로 트럼펫과 팀파니의 힘찬 울림과 웅장한 합창으로 시작되며 마지막 곡 또한 환희에 찬 전주와 합창 그리고 후주로 끝나는데 6부는 합창의 힘을 무엇보다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립합창단은 지휘자의 손끝, 입모양에 따라 유감없는 기량을 발휘했다.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과하지 않은 연주, 중간 중간의 첼로 독주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사실 공연 전에 관악 주자들의 실수는 없을까 걱정했는데 정말 크게 박수치고 싶은 것은 트럼펫이나, 플루트, 오보에 주자들의 완벽한 연주였다. 독창자들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종교음악 연주회에 누구보다 경험이 많은 베이스 정록기는 정확한 발음과 감정표현까지 나무랄 데 없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미성의 테너는 복음사가의 역할을 대체적으로 잘 담아냈지만 1부 첫 서창과 마지막 6부의 아리아 등에서 음정 불안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소프라노, 알토는 성탄의 기쁨과 종교적 확신이 충분히 목소리에 담아내지 못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2부 첫 곡 신포니아에서 오르간이 미리 건반을 누른 점도 옥의 티였다. 공연 중 휴대전화 소리도 몇 번 울린 것이나 긴 공연에 무리하게 어린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도 보였는데 아이들이 지루해하며 떼를 쓰는 모습은 불쾌감을 남겼다. 감동적인 공연은 지휘자와 합창단의 뛰어난 연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주의 흐름에 따라 함께 공감하는 것인데 2부의 경우 아주 깊은 밤은 객석의 침묵으로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이번 공연은 빈프리트 톨과 함께 지난 몇 년간 다양한 레퍼토리로 축적된 대전시립합창단의 실력을 입증하는 무대였다. 다음 정기연주회에서 무엇을 들려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인류의 삶은 말할 수 없이 발전했지만 영혼의 곤궁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로 이루어진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인류를 구원하고자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위대한 합창으로 거듭난 작품이다. 빈프리트 톨과 대전시립합창단이 이를 증명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