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포니의 삶을 산 작곡가 헨델의 '메시아'를

또 다른 폴리포니의 삶을 산 지휘자 빈프리트 톨이

호모포니 형식으로 만들어 낸 천상의 선율

 

교회 성가대에서 연주회 관람티켓을 준 것은 엊그제 일요일이었다. 성가대 연습이 끝나고 나서 아내가 어렵사리 두 장의 티켓을 받았다. 

 

7시 20분 경 지하2층에 주차하고 나서 예술의 전당 광장으로 올라왔다. 정면에 성탄절 트리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제 94회 대전시립합창단의 연주회를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들 손에 손에 빨간 연주회 설명책자를 들고 있었다. 이것을 나누어 주는 직원에게 가니 벌써 동이 났다고 한다. 

 

1층 H열을 찾아가서 앉았다.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당의 성가대 지휘자와 성가대원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음악 전문가가 아니므로 오늘 설명책자에서 읽은 몇가지 용어를 먼저 인용해야겠다. 그것은 합창의 작곡기법들에 대한 것인데 여기서는 모방기법과 차용기법에 대해 설명한다. 첫째, 모방기법은 폴리포니(polyphony)와 호모포니(homophony)로 나누어진다. 폴리포니는 한 성부에서 시작하는 주제 동기나 선율을 다른 여러 성부에서 반복하는 기법이다. 호모포니는 모든 성부가 같은 리듬으로 노래하는 기법이다. 둘째로, 차용기법은 남의 작품이나 자신의 작품을 빌어다 쓰는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래야 이 글의 처음에 나오는 긴 제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곡가 헨델은 1685년에서 1759년까지 75세의 생을 누렸다. 아버지의 권유로 법학을 전공하는 그는 18세에 함부르크의 오페라 극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 그는 열정을 법학에 쏟았다가 후에 삶의 더 강렬한 열정을 음악에 쏟았다. 그러니 폴리포니의 삶을 산 것이다. 법학을 공부하면서 펼치지 못했던 그의 음악에 대한 천재성은 오페라극장에서 일하면서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헨델은 메시아라는 대곡을 24일만에 작곡한다. 물론 그 이전에 작곡한 네 개의 곡들은 빌어다 쓰는 차용기법을 사용했지만 말이다. 메시아는 마지막 곡 '아멘'을 포함해서 48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하루에 2-3곡은 작곡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 곡을 고아와 과부 그리고 환자들을 돕기 위한 선한 뜻을 품고 작곡하였으며 그의 선하고 순수한 동기가 오늘날까지 이곡이 널리 연주되게 한 단초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편 지휘자 빈프리트 톨은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에 음악교육과 작곡을 접했다고 한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깊이 궁구한 후에 그가 접했을 '헨델의 메시아'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핵심이 되는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영생에 대해 음악이라는 도구로 완벽하게 구성해 놓은 성경 그 자체였을 것이다. 빈프리트 톨 역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음악가의 길을 가고 있으므로, 헨델과 마찬가지로 폴리포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폴리포니의 삶을 살았던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하기 위해 빈프리트 톨이 오늘 지휘봉을 잡았다. 1742년 4월 헨델의 메시아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24명의 합창단과 소박한 관현악단으로 헨델의 지휘하에 처음 연주된 이후 270여년이 지난 지금, 빈프리트 폴은 호모포니 기법으로 그의 열정을 쏟아 메시아를 연주했다. 그의 지휘에 맞추어 부르는 대전시립합창단원들의 노랫소리는 천사들의 소리와도 같이 부드러웠고 마치 한 사람이 부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너무 감미로워서 중간중간에 나도 모르게 살짝 잠들기도 하였다.

 

2부 마지막에 부르는 '할렐루야'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는 사람들의 노랫소리임을 이번 연주회에서 처음 알았다. 구원의 감격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이 이 곡을 듣는다면 그 웅장함과 표현의 적절함에 대해 크게 감명을 받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곡 중에 스며 있는 폴리포니 기법이 어떻게 나에게 서로 다른 느낌을 주었는지 말하고자 한다.

 

제1부 제12곡 전원교향곡(라르게토 에 메조 피아노)에서 나오는 바이올린(시편 150편에 나오는 높은 소리나는 제금의 일종)의 떨림은 마치 한밤 중에 잠자는 양들의 가냘픈 떨림 같기도 하고 캄캄한 겨울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떠오르게도 하였다. 

 

제2부 제20곡 '모욕과 천대 또 버림 받으셨네'를 알토 김선정이 부를 때 현악기들은 조금 느리면서도 나즈막히 떨렸다. 그것은 채찍에 모질게 맞아 파르르 떨고 있는 예수님의 피맺힌 등을 연상하게 하였다.

 

제3부 제40곡 '내 주는 살아계시며'를 소프라노 석현수가 부를 때도 간간히 악기들이 떨림음을 내었는데 이것은 성도들과 천군천사들이 예수님의 부활하셨음을 기쁨에 겨워 찬양하는 듯이 들려 왔다. 

 

헨델은 예수님의 고난 받으시는 부분을 제2부 제20곡에서  낮은 여성목소리 알토를 빌어서 비통함을 상당히 오랫동안 세세하게 표현하였다. 부활의 기쁨에 대해서는 높은 여성의 목소리인 소프라노를 도입하여 꽤 긴 시간을 할애해서 제3부 제40곡을 연주하게 하였다. 

 

사람의 목소리가 그 어느 악기소리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어떤 이의 말을 실감나게 하는 연주회였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연주한 대전시향의 부드럽고 절제된 음색은 메시아의 탄생예언과 고난, 그리고 부활의 전 과정을 그려내는데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도구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제94회 대전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 헨델의 메시아를 듣고 온 날 한 밤 중에

아침이슬 씀.

(원본: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emckorea&folder=6&list_id=11222288)